festina lente 천천히 서둘러라

존경하는 교수님과 면담을 하던 중 미래 계획 얘기가 나왔다. 교수님께서는 내 말을 집중해서 들어주셨다. 아니, 집중을 넘어 한 마디를 놓치지 않고 다 듣고 계셨다. 나라는 사람이 교수님의 노트에 날 것으로 쓰이고 있는 기분이었다.

교수님께서는 시선을 내게 고정한 채 대화에 참여하고 있다는 표현을 적극적으로 해주셨다. 그 눈빛은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. 사람을 사랑하는 호기심 가득한 눈. 소크라테스 철학의 핵심을 인간애로 읽어내신 까닭을 알 것 같았다. 그 눈빛이 감사하기도 했고, 존경스럽기도 했고, 부럽기도 했다.

교수님께서는 몇 가지 조언에 덧붙여 아우구스투스의 이 말을 좋아한다고 하셨다. 'Festina lente - 천천히 서둘러라'. 목표를 향해서 템포 있게 나아가면서도 주변과 자신을 놓치지 말라는 뜻으로 말씀하셨다. 그때 나는 그렇게 조급하지도 그렇다고 나태하지도 않았는데 왜였을까, 울림 있는 충격을 받았다. 그건 아마 교수님께서 오랜 세월 그 말대로 살아오셨음을 어렴풋이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.

면담이 끝나기 전 책상에 놓인 상자에서 초콜릿을 한 움큼 꺼내주셨다. 또 찾아오라는 말과 함께 몇 걸음 되지 않는 문 앞까지 배웅해 주셨다. 감사했다. 인사를 드리고 방을 다시 훑었다. 소박하고 현명한 사람의 세월이 짙은 온기처럼 느껴졌다.